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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형질을 변형시켜라.


박탈당한, 혹은 상실된, 일상성의 빈 자리로부터 의외성과 낯설음을 오롯이 부각하는 사물은, 그러므로, 더 이상, (적어도 일상 속에서와 똑같은) 사물이 아니다.

사람과 사물이 관계 맺어지는,
그 관계의 지평으로부터 오롯이 부각되는 사물,
사람에게도, 사물에게도 속하지 않는 사물,
말 그대로의 사물,
단지 사물일 뿐인 사물,
모든 의미론적 선입견(특히 일상성과 관련한)으로부터 절단된 사물,
그 자체 자족적이고 고립적인 사물,
리터럴오브제를 실현하고 있는 사물이다.

엄밀하게는, 사물이 아닌, 사물이 자기를 열어 보이는 존재의 스펙트럼 가운데 한 지점이며,
순간의 한 지점이다. 작가의 그림은 이처럼 사물이 자기의 존재성을 드러내는 한 지점을,
그 의외성과 낯설음을 보여주는 한 순간을 포착해내고, 그 순간의 경험을 고정시킨다.

이미지의 일정부분을 벨벳이나 인조 모피 등의 오브제를 차용해 붙여 만든 화면에다, 부식기법에 의한, 깊이감이 느껴지면서도 분방한 목탄 드로잉을 연상시키는 회화적 질감을 더해, 부드러우면서도 우호적인, 시각적이면서도 촉각적인 특유의 화면을 연출하고 있다. 여러 이질적인 판법과 기법이 중첩되고 혼용된 화면이, 이미지의 즉물성(모티브로 차용된 사물의 물성)을 강조하기보다는 정서적 환기력이 강한 분위기 위주의 화면이 단순한 판화의 경계를 넘어 드로잉과 평면회화의 경계를 아우르고 있다.

고충원(미술비평)